폴란드 탱고는 춤을 추지 않는다

마이크로폰이 등장하기 전 20세기 초까지 가수들은 오페라 가수처럼 객석의 뒷까지 들리도록 배통을 울려 목소리를 울렁차게 내거나 소리를 꽥꽥 내질러야 했다. 모든 객석을 커버하는 성량이 풍부한 카루소 같은 테너가 득세한 것이다.


마이크로폰과 앰프가 등장하고 라디오 시대가 열리자 이제 사람들은 고요한 음성, 감성적이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원했다. 20년대 재즈시대가 되자 진 오스틴, 앨 보울리 같은 가수들은 대중의 변화된 감성에 대응해 자장가처럼 읊조리는 듯한 창법을 선보였다. 자장가처럼 감미롭다고 해서 이들은 크루너라고 불렸다. 대중의 감성이란 게 기술-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탱고의 황제 까를로스 가르델이 사고로 죽기 전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가 주로 춤곡으로 소비되고 있었는데, 유럽으로 건너간 탱고는 감상곡으로 변해 있었고 특히 재즈시대 폴란드에서는 크루너와 결합해 폴란드 탱고가 탄생하게 된다. 왜 하필 폴란드였을까?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에 기대고 있는 폴란드 탱고를 듣고 있으면 폴란드인들은 마치 기쁨을 슬픔으로 변모시키는 놀라운 마법능력을 갖고 있는 민족처럼 보인다.


물론 폴란드 탱고의 멜랑콜리가 공황시대의 우울증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보면 한국처럼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폴란드가 가지고 있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침략과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개그에서 '바보'의 대명사로 통할 정도로 순진한 폴란드인들은 잘 속는 걸로 유명한데, 파시즘이 발호하던 1930년대 공산주의에 대한 과도한 거부감으로 나치에 우호적이었던 폴란드인들은 오래지 않아 그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폴란드 탱고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이별의 정서가 아우슈비츠를 예견하는 듯 보이는 그러한 신비는 바보가 보여주는 일종의 예언적 능력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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