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된 노래'는 고통의 미학화인가?
<중단된 노래>에 대해 '고통의 미학화'라는 비판은 합당한가?
루이지 노노의 Il canto sospeso(중단된 노래)는 현대 클래식음악에서 윤리와 전위의 가장 완벽한 결합이라 평가를 받는다. 이는 현대 클래식 3인방 중에서 루이지 노노를 차별화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피에르 불레즈가 구조적 엄밀함에, 칼하인츠 스톡하우젠이 음향적 우주론에 몰두할 때, 루이지 노노는 그 차가운 총렬주의(Serialism)의 칼날 위로 파시즘에 저항하다 처형된 이들의 절규를 실어 보낸다.
하지만 이는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공격지점이기도 하다.
아도르노의 비판: 고통의 미학화에 대한 경계
아도르노는 그의 유명한 에세이 <참여(Commitment, 1962)>에서 노노의 Il canto sospeso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비판적인 날을 세운 바 있다.
| T. W. Adorno |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극도로 엄격했다. 그는 노노가 처형된 저항군들의 편지(텍스트)를 총렬주의라는 정교한 음악적 형식 안에 가둠으로써, 그 고통의 본질을 '아름다운 예술적 대상'으로 치환(Aestheticization)해버렸다고 보았다.
아도르노는 고통스러운 유언들이 세련된 합창과 음악으로 변모할 때, 청중은 그 비극을 직면하기보다 '음악적 숭고함'으로 승화시켜 오히려 그 비극을 '견딜 만한 것(erträglich)'으로 오해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노노의 반론: 중단된 소리의 정치학
노노는 아도르노의 이런 비판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텍스트를 음절 단위로 쪼개어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게 만든 것은 '미학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목소리가 끊기고 파괴되는 그 순간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 Luigi Nono |
언어가 노래가 되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허공에 흩어지는 그 '중단(Sospeso)'의 상태야말로, 파시즘에 의해 생이 중단된 이들의 상태를 가장 전위적으로 증언하는 방식이라는 논리였다.
| Mainz: Ars Viva Verlag, 1956. |
아도르노의 후기 입장과 묘한 인정
재미있는 점은 아도르노가 이후 <미학 이론(Aesthetic Theory)>과 다른 강연들을 통해 노노의 성취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비쳤다는 점이다.
그는 불레즈나 스톡하우젠의 음악이 '기교적 물신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하면서도, 노노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억을 소리에 각인시키려 사투하는 유일한 작곡가"라는 점을 높게 샀다.
"윤리와 전위의 완벽한 결합"이라는 지점은, 사실 아도르노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예술의 진리 내용(Wahrheitsgehalt)'과 맞닿아 있다. 다만 아도르노는 그 결합이 너무 '직접적'일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타락을 끝까지 경계했다.
노노의 음악이 사람들을 전율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아마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소리를 파괴해야만 했던 어떤 윤리의식"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불레즈나 스톡하우젠의 음악이 '완결된 구조물'이라면, 노노의 Il canto sospeso는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열린 상처' 같은 음악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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