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가 우리에게 남긴 것
최근 AI가 단 몇 초 만에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는 세상을 보면, 문득 한 위대한 예술가의 문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 데이비드 호크니 |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난 현대 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그는 평생 아이패드부터 카메라까지 온갖 현대적 도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얼리어답터였지만, 동시에 예술가의 '몸과 시간'이 가진 가치를 가장 치열하게 수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호크니가 세상에 던졌던 날카로운 질문과 AI 시대를 맞이한 지금 우리가 왜 그의 예술철학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2012년 런던, "모든 작품은 작가가 직접 만들었다"
시간은 2012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에서 열린 호크니의 대형 전시회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이례적인 문구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모든 작품은 작가가 직접(by the artist hand)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 문장은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누구나 한 사람을 겨냥한 저격 글임을 알아챘기 때문이죠. 바로 조수 수십 명을 동원해 알약 수천 개를 붙이거나 점을 찍는 방식으로 작품을 대량 생산하던 현대 미술의 스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였습니다.
| 데미언 허스트 |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은 인간의 '손'과 그 손이 캔버스 위에서 보낸 '시간'에서 나온다.
데미안 허스트: 예술은 물리적 노동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나오는 '개념(Concept)'이다. 제작은 누가 해도 상관없다.
법과 시장은 '개념'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실 미술사적으로 보면 데미안 허스트의 방식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과거 거장 루벤스도 거대한 공방을 운영하며 조수들에게 밑그림을 그리게 했고, 앤디 워홀은 아예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공장)'라 불렀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조영남 대작 사건'이었죠. 이에 대해 대한민국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 대작 논란을 낳은 조영남의 화투 시리즈 중 한 작품 |
"예술 작품의 핵심 가치는 창작적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있으며, 조수를 활용해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은 현대 미술의 정당한 관행이다."
사법부도, 수천억 원이 오가는 미술 시장도 결국 호크니가 아닌 허스트의 손을 들어준 셈이었습니다. 아이디어가 곧 권력이자 예술이 되는 시대, 호크니의 고집은 구시대적인 아날로그적 집착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2026년의 반전: AI 시대, 역전된 가치
그러나 2026년 현재,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간 조수조차 필요 없는 시대입니다. 생성형 AI에게 몇 줄의 명령어(프롬프트)만 입력하면, 인간보다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순식간에 찍어냅니다. 허스트가 말했던 '개념과 아이디어'의 가치가 극단적으로 저렴해진 것입니다.
모두가 말 한마디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AI 시대가 도래하자, 역설적으로 우리는 다시 '인간의 손'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얼마 전인 2026년 3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종지부를 찍은 AI 저작권 분쟁 판결입니다.
"AI가 100% 만든 작품이라도, AI와 그 사용자는 저작권을 가질 수 없다."
컴퓨터 과학자 스티븐 탈러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그린 이미지 '천국의 입구'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항소심에 이어 연방대법원까지 상고를 기각하며 명확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미국 저작권법상 저작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인간이어야 함(Human Authorship)'을 요구하며, 인간의 물리적 창작 기여가 없는 AI의 산출물은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선언이었습니다.
| 스티븐 탈러 박사가 AI 프롬프트로 제작한 <천국의 입구> |
아이디어(프롬프트 입력)만 제공하고 제작을 전적으로 기계에 맡긴 결과물은 법적으로 '예술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 판결은, 14년 전 데미안 허스트의 손을 들어주었던 세상이 다시 뒤집혔음을 증명합니다.
호크니가 2012년에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붓질이나 아날로그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도구가 붓이든, 카메라든, 아이패드든 상관없이 "작품을 만드는 모든 순간의 판단이 예술가의 몸과 감각을 직접 통과해야 한다"는 숭고한 신념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술에서 무엇을 사는가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의 '개념'에 서명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캔버스 위에서 보낸 자신의 '시간'에 서명했습니다.
AI가 인간의 뇌를 흉내 내는 시대에, 호크니의 철학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예술에서 소비하고 감동하는 것은 과연 세련된 '아이디어'일까요, 아니면 서툴더라도 인간의 몸이 통과해 낸 '노동의 시간'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예술 작품 앞에서 느끼는 전율은, 그 작품이 만들어지던 물리적 순간에 '그 예술가가 실제로 거기 존재했다'는 지울 수 없는 사실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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